필리핀에서 먹고살려면 영어 잘해야 하겠지?

일단 결론 부터 이야기하자면, 당연한 얘기지만 '잘하면 좋고 못해도 그럭저럭 할만하다'입니다.
여기서 영어를 못해도 그럭저럭 할만하다를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영어를 못하면 좀 불편하지만 할 건 다 한다'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세계 2위의 영어권 국가는 어디일까요?
1위는 당연히 미국이겠고 2위는 아마도 영국이겠지요? 그런데 2위는 영국이 아니라 나이지리아 입니다. 나이지리아는 공식적으로 인구가 무려 2억 명이 넘으니 영국보다도 영어 사용자가 더 많은가 보네요. 필리핀을 영어권 국가로 분류할 것인가 아닌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아무튼 필리핀 인구는 1억 명이 넘고 국민들 상당수가 영어로 의사 표현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고 봐도 됩니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영어를 '학습'을 통해 배웠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모국어를 사용합니다. 

여담입니다만 필리핀은 지방 방언이라고해서 서울말과 경상도 말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말이 안 통합니다. 그래서 공식 언어인 따갈로그(서울말)를 사용하기도 하고 영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필리핀에서 사업을 한다고해서 필리핀어를 새로 배울 수는 힘드니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그럼에도 그럭저럭 할만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 몇가지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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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리핀 사람들은 관대하다.
 한국인 뿐만이 아니라 일본인, 중국인 등의 어설픈 영어도 잘 들어줍니다. 본인들이 아주 능통하지 않다는 동병상련일 수도 있는데 중학교 영어 수준도 안 되는 사람과의 대화일 지라도 열심히 들어주고 본인들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미국이나 호주에서 질문을 하는데 현지인이 못 알아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그냥 무시하고 '무슨 말?' 이냐고 되묻지 않을 수도 있지요 ㅠ 하지만 필리핀에서는 그렇다고 의기소침해 있지 않아도 됩니다. 이것은 다른 관점으로 보면 한국인은 '돈을 가진 사람' 때문이기도 합니다.

2. 부키 핑 시스템이 있다.
 하지만 명색이 사업가인데 아무리 작은 사업체라도 운영을 하려면 국세청에 세금도 내야 하고, 시청 가서 허가도 받아야 하고, 운전면허도 발급받아야 하는데 내가 필리핀 법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필리핀에는 '북키퍼' 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경찰서, 시청처럼 서류 작업이 필요한 일을 대신 도와주면서 수수료를 받는 사람들(또는 회사)입니다.

사업하는 당사자가 이런일들을 직접 하나하나 관장하면 좋겠지만 이건 영어실력과 관계없이 모두(거의 대부분) 돈 주고 대리인을 이용합니다.
전 세계 어디에도 한국처럼 일처리 빠르고 편리한 곳이 없는 건 다들 알고 있지요? 필리핀에서의 행정처리는 처리속도가 느린 것도 있지만 상당히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때로는 공무원들이 부패해 있습니다. 아침 일찍 찾아가서 반나절 대기했는데 서류 부족하다고 또는 Cut off 타임에 걸려서 그냥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며 오라는 날 시간 맞춰 갔더니 직원들 파티한다고 아예 문이 닫힌 말도 안 되는 경우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수료가 좀 들더라도 북키퍼를 이용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우며 북키 핑 서비스 회사는 한국 회사도 여럿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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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 교민 인프라가 잘 돼있다.
여행자 신분일때는 '로컬을 이용하면 싸고 만족도가 높다'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저도 해외여행을 가면 반드시 현지 식당으로만 골라서 찾아다니려고 노력하곤 하는데 필리핀에 장기체류하다 보면 오래지 않아 스스로 그런 편견을 깨트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현지인 광고를 보고 에어컨수리를 부탁했다고 해보죠. 확실히 한국업체보다 비용이 쌉니다. 일단 오기로 한 시간에 오질 않습니다. 기다리다가 전화를 해보면 연락이 안 되죠. 반나절 있다가 나타났습니다. 에어컨을 뜯어보는가 싶더니 점심시간이라고 다 같이 나갑니다. 들어와서 보는가 싶더니 부품이 없다고 사러 간다고 갑니다. 어두워지면 안 돌아옵니다. (운 좋게) 다음날 나타나서 뚝딱뚝딱하더니 다됐다고 미션 완료 후 돌아갑니다. 다음날 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반복합니다.
언제나 이런식인건 아니지만 이런 상황을 만날 가능성이 늘 존재합니다. 만약 선금을 주었다면 언제 갔다가 안 돌아와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분명히 비용이 한국업체보다 싼데 결국엔 싼게 아닙니다.

하지만 필리핀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업종에 한국인들이 진출해 있습니다. 
한식당, 마사지샵등은 말할 수 없이 많고, 인테리어, 자동차 정비, 목공소, 유리가게, 휴대폰 수리, 티셔츠 맞춤 제작, 명함, 에어컨 청소, 방역까지... 
심지어 카카오톡 단톡방도 여럿 개설돼 있어서 도움이 필요할 때 요청하면 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인프라가 잘 깔려 있기에 굳이 현지인과 안되는 의사소통해가며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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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야나두! 영어 공부할 거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외국나가 사는데 영어는 불편하지 않을 정도는 구사해야 되겠지요. 우리들이 흔히 잘못 생각하는 게 있는데 영어권 나라 가서 살면 저절로 영어실력이 늘 거라는 착각입니다. 위의 1)~3)이 반복되는 삶이라면 영어실력 향상은 고사하고 처음 필리핀에 발을 디딜 때보다 날로 자신 없이 지는 영어실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필리핀은 나의 영어실력을 향상시켜 줄 준비가 늘 돼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어실력은 속칭 '깡통'에서 '상급(Advanced)' 정도 까지입니다. 이미 영어가 능통하신 분들은 스스로 공부 안 하면 나날이 빈약해지는 어휘를 겸 험하게....)
한국인이 원장님인 어학원도 여기저기 많이 있고 소개받거나 찾아보면 개인튜터를 구할수 도 있습니다. 저렴한 수업료로 원하는 장소에 불러서 편한 시간에 맨투맨으로 수업을 받을 수 도 있으니 다른 영어권 국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간혹 선생님의 실력이 수준 이하인 경우도 있으니 유념해야 합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필리핀은 세계 어느나라보다도 언어의 장벽에 대한 문턱이 낮은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교민분들 중에는 보기 민망할 정도의 영어실력으로도 사업체를 잘 꾸려나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수년을 체류했어도 아직도 민망한 수준이면 자신에게도 면목이 없을 테니 영어공부는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현명할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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